소군고사의 원류를 찾아보고, 지금까지 다른 역사, 문학작품에 나오는 소군고사를 찾아보고 각각의 내용의 변화를 찾아보았다.
1. 소군고사의 사적
소군은 서한원제(西漢元帝 :BC48~33년)때의 궁녀로 경녕원년(竟寧元年 :BC33년) 화친이라는 미명 아래 구노(句奴) 추장 호한사(呼韓邪)에게 시집보내져 한
Ⅰ. 漢대의 소설
1. 漢대의 소설인식
漢 대에는 중국소설에 관한 이론이 처음 등장한다.
① 班固 ― 소설가라는 부류는 대개 패관에서 나온 것으로, 거리와 골목에서 말하거나 길에서 듣고 꾸며 얘기하는 자들이 지어낸 것이다. (小說家, 合叢殘小語, 近取譬喩, 以作短書, 治身理家, 有可觀之辭.
Ⅰ. 서 론
1. 주제 선정 배경
중국은 황하 강 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한,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유물과 유적이 많고, 역대 왕조들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중국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대한 땅, 인구 조사조차 어려운 많은 국민, 만리장성, 다양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알씨(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 출전은 한서)이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명비(明
‘경국지색’은 후대의 유학자들이 경계의 의미에서 그렇게 의도적으로 서술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비로써 왕을 잘 보필하지 못한 여인들의 잘못은 고려하되 무작정 그 여인들에게만 멍에를 씌우기 보다는 그러한 점을 주지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관련 여인들의 고사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却說伯榮母女, 奉命祭陵, 驕縱不法, 上干天變, 下致人怨。
각설백영모녀 봉명제릉 교종불법 상간천변 하치인원
?? [ji?oz?ng]교만하고 방자하다
각설하고 백영 모녀는 어명을 받들어 능묘제사를 가서 교만 방자하고 불법적인 일을 하여 위로 하늘의 변고가 있고 아래로 사람 원망이 이르렀다.
尙書僕射
왕소군의 본명은 왕장으로, 전한 원제의 후궁이었다. 원제에게는 후궁이 많아 화공이 그린 형상을 보고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는데, 뇌물을 주는 궁인도 많았으나, 왕소군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흉노 선우가 공주 한 사람을 보내줄 것을 청하여, 원제는 그림만을 보고 소군을 선발했다고 한다. 왕
대체로 당나라 이전까지 중국의 여성들은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자유로운 남녀교제뿐 아니라 뜻에 맞지 않으면 이혼과 재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 왕조가 시작된 후, 점차 여성들은 집에 남아 술상을 준비하고 길쌈을 본업으로 삼아야 했고 길거리를 활발하게 나다닐 수조차 없었다. 노예